[삶과 믿음] 부러움으로 드리는 기도
지난주, 우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조지 뮬러 박물관을 방문하여 그의 발자취와 사역이 남긴 지속적인 영향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기도하는 사람이자 고아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의 신앙, 유산 그리고 계속되는 사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조지 뮬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애슐리 다운고아원에서 평생 1만여명의 고아를 돌보고, 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전도지를 배포했다. 그의 사역은 가족지원센터 운영 및 교육 사업, 빈곤층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 교회와 단체 지원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35년 서른 명의 여자아이로 시작한 뮬러의 고아원 사역은 넓은 대지 내 다섯 동의 건물에 2000여명의 고아를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의식주 제공은 물론,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갈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은 감탄이 나올 만큼 단정하고 잘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받은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고 질적으로 높아서 고아들에게는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가 나이 들어 고아원을 떠날 때는 두 벌의 정장과 약간의 돈을 줬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고아원에 머물 수도 있었다. 고아원에서 고아들은 교사, 간호사, 가사 도우미 등의 직업 교육도 받았다. 5만 번이 넘는 기도 응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는 고아원을 위해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결과 그의 사역은 필요한 만큼 늘 채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는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건강을 고려해 준비되고 아이들의 신체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나들이하러 가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했다. 190년 전에 고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 못지않게 의복을 갖추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준비된 사회인으로 양육된 것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자세히 만나본 19세기의 고아 양육에 관한 기록은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하는 우리를 부럽게 했다. 사실 아이티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부럽지 않은 일이 없다. 아이티에서 바로 옆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넘어가면 포장된 길과 울창한 숲이 부럽고, 허름한 시멘트 가옥조차 부럽다. 지난 주일예배에 파라과이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소개한 파라과이 빈민가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사역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면서도 사실은 부러웠다. 지금 아이티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고아원은 모두 갱들이 점령한 지역 안에 있다. 두 개 고아원은 갱들에게 쫓겨나 잠자리를 잃었고, 이 와중에 한 개 고아원은 렌트를 못 내 곧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꾸준히 송금하고, 현지에서 식량을 사 공급하고, 숨 막히는 삶을 위해 계속 지원금을 전달하지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던데, 다른 이들의 삶이 부러운 것은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이다. 아이티 고아들도 그렇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싶어서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느낀 부러움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기도 하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눈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남부럽지 않은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기도 애슐리 다운고아원 고아원 사역 아이티 고아들